
( 아~ 화질 좋은 이미지로 보니 더욱 더 표지가 너무 예쁜 책이다. )
이번 책은 백수린 작가의 <여름의 빌라> 라는 책이다.
독서 모임에서 선정된 책이어서 읽게 되었는데 '백수린' 이라는 작가를 알게되어 이 책을 읽어보자고 말씀해주신 회원님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이 책은 작가가 써 왔던 여러 단편 소설을 묶어 놓은 단편 소설집이고,
<시간의 궤적>, <여름의 빌라>, <고요한 사건>, <폭설>,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흑설탕 캔디>, <아주 잠깐 동안에>,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
이렇게 8개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중에서 나는 <시간의 궤적>, <고요한 사건>, <흑설탕 캔디> 이 세 작품이 아주 좋았다. 좋았던 이유는 이 세 편은 다 읽고나니 뭔가 마음에 찡-한 게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저작권에 위반되니 이 정도로. 책의 제목인 <여름의 빌라>라는 작품은 아쉽게도 그렇게 큰 임팩트는 없었다.
(그러나 여름에 출간하기에 <여름의 빌라>라는 제목은 너무 매력적이지 않나? 생각해본다.)
'백수린' 이라는 작가의 책은 처음 읽어봤는데 책을 계속 읽으면서 아주 좋았던 것은 첫 번째로,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이 각 단편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이다. 20대 유학생 여성, 30대 주부 여성, 고등학생 여성, 백발의 할머니, 30대 남성 등 정말 각양각색의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두 번째로는 글 속에서도 작가의 배려심이나 섬세함이 느껴진다는 것. 어느 하나 사회의 문제를 다루지 않은 이야기가 없고, 그런 사건들에 대해 작가가 생각하는 것들을 아주 섬세한 문장으로 조심스럽게 표현하며 이야기를 써내려간 것을 보면서 글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표지를 보자면 굉장히 감성적인 책일 듯 싶지만 생각보다 감성적이라는 느낌은 많이 받지 못했다. 그게 별로였다기 보다는 오히려 담담하게 풀어낸 것들이 깔끔하면서도 편하게 다가왔다. 너무 감성적인 책을 보고 있노라면 가끔은 읽기 힘들 때가 있는데 정말 술술 잘 읽혔다.
제목은 <여름의 빌라> 이지만 지금 약간 쌀쌀한 가을 또는 겨울에 읽어도 괜찮을 책이고, 앞으로 '백수린' 작가의 책은 찾아보게 될 것 같다.
<마음에 들었던 부분>
p.18
안주를 지향하지만 탈주를 동경하고, 고독을 좋아하지만 타인과의 결함을 원하는 나의 모든 면을 언니가 알고 있듯이.
p.23
"우리는 전부를 걸고 낯선 나라에서 인생을 새로 시작할 만큼 용기를 내본 적 있는 사람들이니까, 걱정 마. (...)"
p.25
언니는 프랑스에 한시적으로 머물다 돌아갈 사람이고 나는 여기에 남을 사람이라는 사실이 우리 사이에 보이지 않는 금을 그어놓은 듯했다.
p.30
어쩌면 이번 여행을 계기로 우리의 관계가 회복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고, 예감뿐이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한 기분이었다.
p.35
나는 언니라면 그것을 이해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언니가 이해해주지 못할 리 없다고 믿었기 때문에
p.36
행복에는 정해진 양이 있어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타인을 불행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처럼
p.53
지호는 그날 술에 취해서 비에 젖은 택배처럼 집으로 실려왔습니다.
p.78
어머니가 앞장서서 문을 열고 들어갔기에 나는 골목 안쪽, 청록색 대문의 집이 우리가 앞으로 살게 될 곳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p.85
그런 말들은 끈끈하게 내 발바닥에 들러붙어 어디든 걸을 때마다 쩍쩍, 소리가 날 지경이었다.
p.89
해지에게 내가 그저 삶을 구성하는 한 부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당시 나를 때때로 슬프게 했다.
p.92
그들이 그리는 미래가 비눗방울처럼 커다랗게 부풀어오를수록 나는 이상하게도 점점 불쾌해졌는데
p.98
나와 무호의 삶이 교차할 수 있는 순간은 너무나도 짧고, 우리는 이제 몇 년의 시간이 흐르지 않아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될 것이며, 더이상 우리의 인생은 겹쳐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내가 너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생각도.
p.104
앞으로 나는 평생 이렇게, 나가지 못하고 그저 문고리를 붙잡은 채 창밖을 기웃거리는 보잘것없는 삶을 살게 되리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잇었으니까.
p.113
그녀는 그때 처음으로 어른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고서도 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p.115
다만 그녀는 일년간 받아야 하는 사랑을 한 달 안에 미리 당겨 받으려는 사람처럼 엄마의 뒤꽁무니만 쫓아다녔다.
p.125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그녀는 어쩌면 미국에 갈 때마다 잣니이 원했던 것은 엄마의 불행한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p.195
어느 날 문득 할머니는 동사를 사전에서 찾다가 삭제된 시제들이 대부분 과거형이며 할머니에게 미래형 동사를 써서 표현할 것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p.198
오래전, 스스로 너무 늙었다고 느꼈지만 사실은 아직 새파랗게 젊던 시절에 할머니는 늙는다는 게 몸과 마음이 같은 속도로 퇴화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몸이 굳는 속도에 따라 욕망이나 갈망도 퇴화하는. 하지만 할머니는 이제 알았다. 퇴화하는 것은 육체뿐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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